[채권 투자 1회] 미국-이란 전쟁이 왜 유가를 올리나 — 호르무즈 해협의 모든 것

2026. 3. 17.

 

시리즈 안내: 이 글은 '미국-이란 전쟁과 채권 투자 완전 해설' 8부작 시리즈의 첫 번째 글입니다. 전쟁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어떻게 흔드는지, 그리고 그것이 내 투자와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풀어드립니다.

 


2026년 2월 28일 새벽,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향해 대규모 공습을 시작했습니다. 'Operation Epic Fury'라는 작전명으로 단 12시간 만에 900회 이상의 공습이 이루어졌고,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새벽부터 글로벌 원유 가격은 멈추지 않고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2주 만에 유가는 40% 이상 급등했습니다. 왜 이렇게 빠르게, 이렇게 크게 오른 걸까요? 그 답은 지구상에서 가장 좁고 가장 중요한 해협 하나에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 세계 에너지의 숨통

호르무즈 해협은 아라비아반도와 이란 사이에 위치한 폭 약 33~96km의 좁은 수로입니다. 지도 위에서 보면 그저 작은 해협처럼 보이지만, 이 좁은 물길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원유는 약 1억 배럴입니다. 이 중 약 2,100만 배럴, 즉 전체의 약 20%가 매일 이 해협을 통과합니다. 여기에 LNG(액화천연가스)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 LNG 교역량의 약 25%도 이곳을 지납니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원유의 무려 84%는 아시아 시장으로 향합니다. 중국은 자국 원유 수입의 약 3분의 1을 이 해협을 통해 들여오고, 한국과 일본은 각각 원유 수입의 70~90%가 이 길목에 의존합니다. 호르무즈는 중동 산유국들의 수출로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아시아 경제 전체의 에너지 생명줄입니다.


이란은 왜 호르무즈를 무기로 쓸 수 있나

이란의 해안선은 호르무즈 해협 북쪽을 따라 길게 뻗어 있습니다. 이란은 이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수십 년간 해협 봉쇄 카드를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왔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이란이 선택한 전술은 정교했습니다. 값비싼 대함 미사일을 낭비하는 대신, 저렴한 드론과 기뢰를 해협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공개적으로 이렇게 밝혔습니다. "미사일이 없어도 드론과 기뢰만으로 세계 보험사들이 이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보험을 들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됐습니다. 전쟁 발발 후 16척 이상의 유조선이 공격을 받았고, 로이즈 오브 런던을 비롯한 주요 해상보험사들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보험 인수를 사실상 중단했습니다. 보험이 없으면 선박 운항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미사일 한 발 쏘지 않고도 해협이 막혀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전쟁 전 하루 2,100만 배럴이 지나던 이 해협을 통한 원유 통행이 사실상 90% 이상 중단됐습니다.


하루 800만~1000만 배럴이 사라지면

세계 원유 시장에서 하루 800만~1000만 배럴의 공급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규모 감각을 위해 비교해보겠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수요가 무너지면서 유가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는데, 그때 수요 감소량이 하루 약 2000만 배럴이었습니다. 이번 공급 차질은 그 절반 수준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팬데믹 때는 '수요가 없어서' 유가가 떨어진 것이고, 이번은 '공급이 없어서' 유가가 오르는 것입니다. 두 상황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의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비상 비축유 방출을 검토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호르무즈를 우회하는 파이프라인 가동을 최대로 늘렸습니다. 사우디의 얀부(Yanbu) 파이프라인과 UAE의 아부다비-푸자이라 파이프라인이 대안입니다. 하지만 이 우회 경로들의 최대 처리 용량을 다 합쳐도 하루 약 700만 배럴에 불과합니다. 하루 2100만 배럴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한국·일본·중국이 긴장하는 이유

이 상황에서 가장 긴장하는 나라들이 바로 아시아입니다.

한국은 중동에서 원유 수입의 약 70% 이상을 조달합니다. 전쟁 발발 후 국내 LNG 재고가 9일치 수준까지 줄어들었고, 이재명 대통령은 100조 원 규모의 에너지 안정기금 조성을 긴급 발표했습니다.

 

일본의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원유 수입의 약 90%가 중동에서 오며, 호르무즈 의존도가 한국보다도 높습니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해군 호위 연합 참여 요청까지 받은 상황에서 헌법상 집단 자위권 제한과 경제적 이해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조금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원유의 3분의 1이 호르무즈를 통해 들어오는 에너지 안보 문제가 있지만, 동시에 이란과의 전략적 관계와 위안화 결제 확산이라는 기회가 공존합니다. 이 복잡한 셈법 때문에 중국은 미국의 해군 호위 연합 요청에 즉각적인 답변을 피하고 있습니다.


우회로도 없고, 대안도 제한적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호르무즈 봉쇄에 취약한 이유 중 하나는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회 경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한 사우디·UAE의 파이프라인 외에도 오만의 두쿰(Duqm)항과 살랄라(Salalah)항을 통한 우회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 항구들조차 이란의 드론 공격 위험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보험사들의 기피 대상이 됐습니다.

 

러시아나 미국 셰일 원유로 대체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은 단기간에 처리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파이프라인과 항구 인프라를 새로 깔고 계약을 새로 맺는 데는 수개월이 필요합니다.

 

결국 호르무즈 봉쇄는 단순히 유가를 올리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전체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충격입니다. 그리고 그 충격은 에너지를 넘어, 인플레이션과 금리, 그리고 자산 시장 전체로 파급됩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유가 충격이 어떻게 미국 장기채 금리를 올리는지, 인플레이션과 재정과 달러의 연결고리를 차근차근 풀어드리겠습니다.


다음 글: [2회] 전쟁이 왜 채권 금리를 올리나 — 인플레·재정·달러의 연결고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