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안내: 이 글은 '미국-이란 전쟁과 채권 투자 완전 해설' 8부작 시리즈의 다섯 번째 글입니다. 전쟁의 피해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모든 전쟁에는 예기치 않게 이익을 얻는 쪽도 있습니다. 이번 회차에서는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가장 큰 수혜를 받는 국가와 산업군을 냉정하게 분석합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Chatham House)는 이번 전쟁을 분석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전쟁의 수혜는 총을 쏜 나라보다 기름을 파는 나라에게 돌아간다."
이 문장이 이번 전쟁의 본질을 정확하게 요약합니다. 실제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장 조용하게, 가장 확실하게 이익을 챙기고 있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을 시작한 미국조차 경제 전체로는 손해를 보면서 특정 산업만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최대 수혜국: 러시아
러시아는 이번 전쟁에서 가장 확실하고 가장 큰 이익을 얻고 있는 나라입니다. 직접 참전하지 않으면서, 총 한 방 쏘지 않으면서 이익을 챙깁니다.
러시아 에너지 수입은 서방 제재로 2021년 연방 예산의 45%에서 2025년 약 20%까지 추락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쟁이 단숨에 판도를 바꿨습니다. 유가가 40% 이상 급등하면서 러시아의 원유 수출 수입이 대폭 회복됐습니다. 제재로 인해 할인 판매하던 원유를 이제는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호르무즈 봉쇄로 중동산 원유 공급이 막히자,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에 더 많은 원유를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 페스코프는 "이란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 에너지 제품에 대한 상당한 수요 증가 신호를 받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전략적으로도 러시아에게 유리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미군의 전략 자산이 중동에 집중되면서 우크라이나 전선에 대한 서방의 관심과 지원이 분산됩니다. 서방 제재의 효력도 에너지 수요 급증 앞에서 희석됩니다.
물론 러시아에게도 리스크가 없지는 않습니다. 전쟁이 너무 오래 지속돼 이란 전후 신정부가 서방과 협력을 택하면 중동 내 영향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이번 전쟁이 러시아에게 분명한 선물입니다.
미국 에너지 섹터: 분리된 수혜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는 전쟁으로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오르고, 재정 적자가 커지고, 경제 성장이 둔화됩니다. 하지만 미국 내 특정 산업은 이 상황에서 크게 이익을 봅니다.
셰일 오일 기업들이 대표적입니다. 중동산 원유 공급이 막히면서 미국 셰일 원유의 가치가 급등했습니다. 퍼미안 분지(텍사스)를 기반으로 한 옥시덴탈 페트롤리엄(OXY)의 주가는 올해 들어 30% 이상 올랐고, 다이아몬드백 에너지(FANG)도 전쟁 발발 첫 주에만 7% 이상 상승했습니다. 이들 기업의 생산 기반은 미국 내에 있어 호르무즈 봉쇄와 무관하게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안전한 공급처 프리미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LNG(액화천연가스) 수출 기업들도 큰 수혜를 받습니다. 유럽과 아시아가 중동 대신 미국 LNG를 더 필요로 하면서 미국 최대 LNG 수출사인 셰니어 에너지(LNG)와 벤처 글로벌(VG)의 주가가 두드러진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이번 에너지 위기에서 가장 강한 수혜를 받는 분야가 LNG 수출, 정제, 북미 시추라고 평가했습니다.
방산 기업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레이시온(RTX)은 패트리엇 미사일과 THAAD 시스템의 긴급 보충 주문이 들어오면서 주가가 15~25% 올랐습니다. 록히드마틴(LMT)과 노스롭 그루먼(NOC)도 F-35 운용 비용 증가와 스텔스 폭격기 투입으로 후속 계약 확대가 기대됩니다. 영국 BAE시스템즈도 개전 첫날 6% 이상 상승했습니다.
인도: 비동맹 실용주의의 교과서
인도의 포지셔닝은 이번 전쟁에서 가장 영리한 전략의 교과서입니다.
인도는 미국 편도 이란 편도 들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산 할인 원유 수입을 지속하면서 동시에 이란과의 비공식 채널을 유지해왔습니다. 그 결과 이란은 인도 LPG 선박 2척에 대해 호르무즈 통과를 허용했습니다. 전쟁 상황에서 인도만이 이란으로부터 통행 허가를 받아낸 것입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러시아 부총리는 "이란 전쟁 관련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인도의 수요 급증 신호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인도는 러시아 할인 원유와 이란 직접 통행이라는 두 개의 에너지 조달 경로를 동시에 확보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도가 철저하게 '실용적 비동맹' 노선을 걷기 때문입니다. 모디 정부는 미국, 러시아, 이란, 중국 어디에도 완전히 편향하지 않으면서 각국의 이해관계를 활용해 인도의 국익을 극대화합니다.
그 결과 인도는 이번 전쟁에서 에너지 비용 상승이라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지정학적 협상력은 최대화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산유국·사우디·UAE: 공급 대체 수혜
호르무즈가 막히면서 전 세계 에너지 바이어들이 대안 공급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에서 이익을 보는 나라들이 아프리카 산유국들입니다. 나이지리아, 앙골라, 리비아 등 서아프리카 및 북아프리카 산유국들로 구매자들이 몰리면서 이들의 원유 수출 가격 프리미엄이 형성됐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상황이 조금 복잡합니다. 유가 상승의 직접 수혜를 받지만,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일부 인프라 피해도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사우디는 얀부 파이프라인, UAE는 아부다비-푸자이라 파이프라인이라는 호르무즈 우회 수출로를 보유하고 있어 중동 내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공급 차질이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한국: 수혜국이 아닌 피해 최전선
반면 한국은 이번 전쟁에서 명확한 피해국입니다.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에너지 구조, 미국 동맹국으로서의 해군 파병 압박, 이란 및 중국과의 경제 관계 —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충돌합니다. LNG 재고는 9일치 수준으로 위험하게 줄었고, 정부는 긴급 에너지 안정기금 조성에 나서야 했습니다.
미국의 해군 호위 연합 요청은 단순한 군사 협력이 아닙니다. 이란,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외교적 선택입니다. 한국에게 이 선택은 어느 쪽을 택해도 손해가 있는 구조입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지, 5가지 시나리오와 각각의 확률을 3월 15일 기준 최신 전황으로 분석합니다.
다음 글: [6회] 미국-이란 전쟁, 얼마나 갈까 — 시나리오 확률 완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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