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투자 4회] 위안화 결제 요구·해군 연합 요청 — 페트로달러 52년 역사가 흔들린다

2026. 3. 18.

 

시리즈 안내: 이 글은 '미국-이란 전쟁과 채권 투자 완전 해설' 8부작 시리즈의 네 번째 글입니다. 이번 회차는 이번 전쟁에서 나타난 두 가지 핵폭탄급 변수, 이란의 위안화 결제 요구와 미국의 한·중·일 해군 연합 요청이 가진 의미를 깊이 분석합니다.

 


2026년 3월 14일, 두 개의 뉴스가 동시에 전 세계 외교·금융 커뮤니티를 흔들었습니다.

 

첫 번째 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Truth Social에 "중국, 프랑스, 일본, 한국, 영국에 전함을 호르무즈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두 번째 뉴스: 이란 고위 관리가 CNN에 호르무즈 통과 선박에 대해 달러 대신 위안화로 통행료 납부를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하나는 군사 동맹의 문제이고, 하나는 통화 패권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두 뉴스는 사실 하나의 거대한 지각 변동을 보여주는 두 개의 신호입니다.

 


페트로달러란 무엇인가 — 52년간의 숨겨진 계약

1973년 1차 오일쇼크 이후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비밀 협약을 맺었습니다. 핵심 내용은 간단합니다. "사우디는 원유를 달러로만 팔 것이고, 미국은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한다."

 

이 합의가 1974년부터 본격화되면서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시스템의 파급 효과는 엄청났습니다. 전 세계가 원유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합니다. 달러를 구하기 위해 무역에서 달러를 받고, 여유 달러로 미국 국채를 삽니다. 그 결과 미국은 달러를 찍어내는 것만으로도 전 세계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특권, 즉 '달러 패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이 미국 장기채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전 세계 중앙은행과 국부펀드들이 달러 준비통화를 미국 국채에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이 체계가 52년 만에 처음으로 진지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란의 위안화 결제 요구 — 달러 심장을 겨냥한 칼

이란이 검토하는 방안은 표면적으로는 간단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이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통과 비용을 내면 통항을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게 그토록 중요할까요?

이란은 실제로 이미 인도 선박과 터키 선박에 선별적으로 통과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두 나라는 이란과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 혹은 위안화 결제로 에너지 거래를 이어왔습니다. 사실상 비달러 국가 우대 체계가 비공식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약 이 방식이 공식화되면 어떻게 될까요?

 

중국, 인도, 러시아 등 BRICS 국가들이 호르무즈 통과를 위해 위안화로 결제하기 시작하면, 원유 결제에서 위안화 비중이 높아집니다. 달러로 원유를 사야 할 이유가 줄어들면 달러 수요가 감소합니다. 달러 수요가 줄면 미국 국채를 사줄 사람이 줄어듭니다. 미국은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만 국채를 팔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단순한 통행료 문제가 아닌 미국 장기채 금리에 대한 구조적 위협인 이유입니다.

현재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7,600억 달러입니다. 만약 달러 패권이 흔들린다는 신호가 강해지면 중국이 이 국채를 대규모로 매도할 수 있습니다. 이 카드가 현실화되면 미국 장기채 금리는 충격적으로 급등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의 해군 연합 요청 — 왜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나

트럼프의 요청은 언뜻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호르무즈가 막혀 글로벌 에너지 공급이 끊겼으니,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나라들이 함께 해협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반응은 차갑습니다.

 

중국은 가장 복잡한 위치에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 동맹에 참여하면 이란(최대 원유 공급국 중 하나)과의 관계가 훼손됩니다. 동시에 위안화 결제 확산이라는 기회도 날아갑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군사 참여를 거부하고 위안화 결제 프레임을 밀어붙이는 것이 훨씬 유리한 계산입니다.

 

한국은 가장 어려운 삼중 딜레마에 처해 있습니다. 미국 동맹국으로서 요청을 거부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란과의 경제 관계, 그리고 중국과의 무역 의존도가 높습니다. 원유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이란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에너지 안보에 직격탄이 됩니다. LNG 재고가 9일치밖에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에너지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국익입니다.

 

일본은 헌법상 집단 자위권 제한이라는 법적 장벽이 있습니다. 실질적 군사 참여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쉽지 않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만 부분적 참여 의사를 밝혔습니다. 프랑스는 "순수 호위 임무로 파견 가능하나 전투가 최고조에 달한 이후"라는 조건부 입장입니다.

 

군사 전문가들은 외교 협정 없이 전함을 보내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란의 기뢰와 드론은 첨단 군함에도 위협이 되고, 설령 군함이 도착해도 이란이 기뢰를 제거하지 않으면 탱커 운항 보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중국이 그리는 그림 — 군사 불참 + 위안화 확산

이 상황에서 중국의 전략은 매우 영리합니다.

 

군사적으로는 '우리는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평화적 이미지를 유지합니다. 경제적으로는 이란의 위안화 결제 프레임을 후원하면서 위안화 국제화를 조용히 진전시킵니다. 전략적으로는 미군 전략 자산이 중동에 집중되는 동안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에서의 압박 공간을 조용히 확대합니다.

 

중국 내부에서도 안보 리스크와 미중 관계 훼손 우려 때문에 신중론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이 의도치 않게 위안화 국제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은 중국에게 분명한 반사 이익입니다.


달러 패권 균열이 미국 장기채에 미치는 장기 영향

정리해보겠습니다. 이란의 위안화 결제 요구는 단기적으로는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도와 터키에 이미 선별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란이 2024년 BRICS에 가입했다는 배경을 고려하면 이것은 실험이 아니라 방향성 있는 전략입니다.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조금씩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면, 미국 국채에 대한 구조적 수요가 장기적으로 감소합니다. 이것은 인플레이션이나 재정 적자와 별개로, 미국 장기채 금리에 '구조적 상승 압력'을 지속적으로 가하는 요인이 됩니다.

 

지금 당장 달러 패권이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달러는 여전히 전 세계 외환 거래의 88%, 무역 결제의 54%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가 쌓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방향 전환에 가속이 붙을 계기를 이번 전쟁이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투자자라면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전쟁으로 누가 가장 크게 이익을 보는지, 러시아와 미국 에너지 섹터, 그리고 인도의 전략적 포지셔닝을 분석합니다.


다음 글: [5회] 이 전쟁으로 가장 이익 보는 나라는 — 러시아·미국 방산·인도의 각기 다른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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